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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축구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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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축구부 연혁

 

우리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축구부가 언제 어떤 경위로 창설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없다. 동아일보 1936 628일자 2면에 제2회 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에서 조선대표로 참가하여 준우승을 하고 돌아온 보전축구를 논한 기사에 의하면 보전 축구부는 1922년 봄에 발족하였으리라 추정된다.


창단초기 운동장을 갖추지 못해 다른팀의 연습장을 전전했던 보전 축구팀은
1929 10월 제10회 전조선 축구대회레 출전하여 6년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보전 축구가 전승가도를 달리는 계기가 되었다.


식민지라는 억압된 상황에서 일본인을 압도 할수 있었던 보전 축구는 선수뿐만 아니라 당시 일반 학생들에게도 저항의 상징이라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 다음은 1920년대 후반 보전의 응원 단장을 지낸 이원홍의 회고다.

 

나의 보전시절이라 하면 모교 24회의 시절로서∙∙∙(중략)∙∙∙보전은 운동의 보전 특히 축구의 보전으로서 동서에 이름을 날리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보연전(?)의 축구전이 이름을 날리었다. 추절이 되면 반드시 보연축구전(?)이 열리어 대인기를 끌어왔다. ∙∙∙(중략)∙∙∙그리고 해마다 평양에 출전하여 숭실전으로서 소리를 쳤고 휘문고 운동장에서 영국해병대들과 시합하여 1 1패로 이름이 구주에 까지 떨치었던 것이오. 또 일본에도 자주 출전하여 승승장구로 대기세를 올리어 적은 복수라도 한 듯이 통쾌하였다.(고려대학교 교우회보, 1970)”

 

이렇듯 보전 축구부는 우리나라를 대표해 일본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올림으로써 축구 이외의 또 다른 운동 종목들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며 우리나라 체육사에 서장을 열 수 있도록 하였다.


해방후
1848년 런던올림픽에 GK로 출전한 홍덕영을 시작으로 지난 2002 FIFA ∙일 월드컵에서는 가장 많은 선수 및 코칭 스태프를 출전시켰으며(코치 심현태, 정해성, 선수 홍명보, 최성용, 차두리, 이천수, 방송 차범근) 최성국, 서정원, 노정윤, 김대의, 이기형, 최성용, 조세권, 김정우, 이임생, 곽경근, 이성재, 박진섭 등이 국내 프로리그에서 각팀의 주축선수로써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축구부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해 나아가고 있다.


또한
, 1962년부터 진행되어 온 일본 와세다대학과의 정기 교류전, 홍명보, 박주영, 차두리 등의 해외무대 진출로 이제 본교 축구부는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 받는 축구 명문으로 발돋움해가고 있다. 매년 9. 잠실벌 축제 정기 고연전의 화려한 대미를 책임질 본교 축구부의 쉼없는 정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必勝★全勝★壓勝
高大精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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